경남 지역 해수면 상승 – 연안 침수와 아열대화 경고
2024년 여름, 경상남도 일부 연안 지역에서는 만조 시간과 강한 바람이 겹치며 도로와 저지대 마을이 침수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특히 거제시 장목면과 통영시 도남동, 사천시 삼천포 일대에서는 기존에는 비가 오지 않아도 물이 도로 위로 넘치는 이른바 ‘역만조 침수’ 현상이 반복되었고, 주민들은 “이젠 만조 시간에 외출도 어렵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해수면이 일시적으로 높아진 게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해수면 상승이 경남 지역 연안의 일상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실제로 해양수산부와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연안 평균 해수면은 1990년 대비 약 10.4cm 상승했으며, 경남 남해안은 전국 평균보다 상승 속도가 빠르다고 분석됐다.
문제는 단순한 침수뿐만 아니라, 기온과 수온 상승, 해양 생태계 변화, 아열대성 기후 확산 등으로 연결되며 지역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경남 지역에서 해수면 상승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연안 침수 피해와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 그리고 아열대화가 초래할 수 있는 장기적인 지역 변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해본다.
경남 연안 해수면 상승의 실태와 침수 피해 사례
2024년 기준, 경남 통영·거제·남해·사천 지역을 포함한 남해안 해역의 해수면은 연평균 약 3.2mm씩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전국 평균인 2.7mm보다 빠른 속도다. 특히 조위관측소 자료에 따르면, 통영시 동호동 조위는 30년 전보다 평균 11cm 상승했으며, 만조 시에는 해수면이 도로 높이를 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24년 8월 11일, 태풍급 강풍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목면 해안도로가 물에 잠기면서 차량 6대가 침수되고 일부 상가가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는 해수면 상승과 조석(밀물·썰물)의 결합, 그리고 강수 없이도 침수가 가능한 ‘기후적 침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런 침수는 기존 배수펌프나 방조제만으로는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주민 생활권 전체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지하수가 바닷물에 오염되는 염수 침투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사천과 하동의 간척지 일부 농경지에서는 토양 염분 농도가 기준치 이상으로 올라 농작물 생육 저해 현상이 보고되었으며, 하동군 일부 마을에서는 지하수 대신 상수도를 공급받는 조치가 취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해수면 상승이 단순한 해양 문제가 아니라 생활기반을 위협하는 문제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후 위기와 해수면 상승의 인과관계
해수면 상승은 해양과 대기의 복합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며, 그 중심에는 기후 위기에 따른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이 있다. 지구가 따뜻해질수록 해수는 열을 흡수하고, 그 결과 해수가 팽창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게 된다. 동시에 극지방의 빙하와 육지빙이 녹으면서 바닷물의 부피 자체도 증가하게 되는데, 이 두 가지 작용이 합쳐져 ‘열팽창 + 융빙 기여’라는 해수면 상승의 이중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한국은 북태평양 서부에 위치해 있어, 해수 온도의 상승이 비교적 빠르게 나타나는 지역이다. 특히 1993년 이후 국내 연안 해수면 상승률은 전 세계 평균보다 30% 이상 빠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경남 남해안의 경우, 대마난류의 세력 강화와 더불어 여름철 해수온도가 28도를 넘는 날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곧 해수면 상승의 가속 요인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와 관련한 대기 흐름의 변화도 영향을 미친다. 온난화로 인해 북서풍 계열 기류가 약화되면, 해양의 열과 습기가 해안으로 더 깊숙이 유입되기 쉬워진다. 이러한 복합적 조건은 특히 경남처럼 해안선이 복잡하고 반도 형태의 지형을 가진 지역에 더 큰 해수면 상승 체감 효과를 일으킨다. 즉, 해수면 상승은 단순히 바다 수위만의 문제가 아닌 기후시스템의 전반적 불안정성과 직결된 현상이다.
해수면 상승이 초래하는 아열대화의 신호들
해수면이 상승하면 그와 함께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기후대의 북상, 즉 아열대화다. 이미 경남 지역은 그 징후를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창원과 진주, 통영에서는 2023~2024년 기준 연평균 열대야 일수가 18일을 넘었고, 겨울철 최저기온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무상일(無霜日)’이 점점 늘고 있다.
2024년 여름, 거제와 남해에서는 열대과수인 망고, 바나나, 파파야가 노지에서 시범 재배되었으며, 일부 농가는 비닐하우스 없이 수확까지 성공했다. 이는 단순한 품종 변화가 아니라, 기온·강수·습도 패턴 자체가 전통적인 온대기후에서 아열대 기후로 전환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기존의 토착 어종이 사라지고, 열대성 어종(갈치, 독가시치 등)이 연중 잡히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생태계와 농업의 변화는 식량안보와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벼농사의 재배기간이 앞당겨지거나,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며 품종 개량이 불가피해지고, 감귤 등 남부 특산물이 더 이상 ‘남부만의 작물’이 아닐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해수면 상승은 단순히 바닷물이 올라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남의 생활환경과 산업 구조 전반을 바꾸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경남형 연안 기후 위기 대응 전략
경남이 해수면 상승과 연안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예방 중심의 기후적응형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첫째로, 연안 저지대 중심의 해안 방재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 기존 방조제는 해수면 상승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마다 강화되는 조위와 풍랑을 막기 어렵다. 따라서 조위 감시 시스템 고도화, 배수펌프 확장, 이동형 방수벽 설치 등 적극적 인프라 투자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둘째, 침수와 염수 침투에 취약한 농경지는 토양 개량, 염분 저감 작물 도입, 물길 재조정 등의 기술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경상남도와 농촌진흥청이 공동 개발한 ‘해수 적응형 스마트 농법’을 시범 운영 중인데, 이를 전 지역으로 확대 보급할 필요가 있다.
셋째, 경남 도민과 지자체의 기후 위기 인식 개선과 공동 대응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기후재난 대응 훈련, 연안 마을 기후협약, ‘기후 취약지역 지정제’ 등을 통해 공공과 민간이 함께 위험을 관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로는 연안 개발 사업에 기후영향 평가를 의무화하고, 해수면 상승 예측 데이터를 반영한 장기 도시계획 수립이 병행돼야 한다.
경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기후 위기의 직접 영향을 체감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해수면은 더 오를 것이고, 기후대는 더 북상할 것이다. 지금의 대응 속도로는 미래 재난을 감당할 수 없다. 예측이 아닌 준비, 대응이 아닌 선제전략으로 경남의 연안은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