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전북 평야지대 가뭄 심화 – 지하수 고갈과 농업위기 분석
2024년, 전북 지역은 심각한 봄철 가뭄에 시달렸다. 특히 김제, 부안, 정읍, 익산 등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강수량이 예년 대비 45% 이상 감소했고, 4월과 5월 두 달간의 누적 강수량은 1973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평야지대는 특성상 논과 밭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농업이 이루어지는 곳이지만, 비가 오지 않자 논은 말라붙고, 모내기를 위한 저수지조차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은 단순한 ‘물 부족’ 문제가 아니다. 지속된 가뭄으로 인해 농업용수 공급에 의존해 오던 지하수마저 급격히 고갈되고 있으며, 이는 전북의 식량 생산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특히 벼농사 비중이 높은 전북평야는 기후 위기 시대의 반복적 가뭄에 극도로 취약하며, 이로 인한 농업 기반 붕괴 위험성이 갈수록 현실화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전북 평야지대의 가뭄 실태, 지하수 고갈과 수자원 구조의 변화, 농업과 농민에게 미치는 경제적·사회적 충격, 기후 위기 시대의 물 관리 및 농업 대응 전략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전북평야지역 가뭄 현황과 강수 패턴 변화
2024년 상반기 전북평야지대의 가뭄은 관측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3월부터 5월까지 김제와 정읍의 누적 강수량은 각각 37mm, 42mm로, 평년 대비 50% 이상 적은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저강수 현상은 2020년대 들어 점차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전북
지역이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 빈발 지역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북의 평야지대는 대부분의 물 공급을 관개시설 및 저수지,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강수량이 부족해지자 소규모 농업용 저수지의 저수율은 평균 30% 이하로 떨어졌고, 일부 지역은 5월 이전부터 이미 관개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평야지대의 특징상 하천 유입량도 적고, 상류에서 물을 끌어오는 데 제약이 있어 강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더욱 취약한 결과를 낳고 있다.
또한, 예년과 비교해 강수의 분포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봄철에 고르게 내리던 비가 최근에는 소나기 형태로 짧고 강하게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지하로 스며들기도 전에 그대로 유실되기 쉽다. 결국 전북의 평야지대는 장기적 저강수 + 집중성 강우라는 새로운 기후 패턴에 적응하지 못하며, 가뭄의 구조화 현상을 겪고 있다.
지하수 고갈과 수자원 불균형의 구조적 문제
지속적인 가뭄과 강수 패턴 변화는 전북평야지대의 지하수 고갈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벼농사나 밭작물 재배에 필요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농민들은 지하수 관정을 늘리고 펌핑을 강화하지만, 이에 따라 지하수 수위가 급격히 하락하고, 관정 간 수량 충돌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전북 일부 농업지역의 지하수 수위는 2024년 기준 전년 대비 평균 1.2m 이상 하락했으며, 김제시와 부안군 일대는 지하수 고갈 취약지역으로 추가 지정되었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지하수 고갈로 인해 지반 침하, 염수 침투, 토양 염류화 등 2차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수자원 불균형 문제도 심각하다. 소수의 대형 관정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용수를 확보할 수 있으나, 중소 농가나 고립된 논 지역은 공급망에서 소외되며 불균형이 더욱 심화된다. 또한 일부 지역은 마을 공동 급수에 지장이 생기며, 생활용수와 농업용수가 충돌하는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결국 이는 단순한 물 부족을 넘어 농촌의 사회적 기반을 흔드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지하수 의존도가 높고, 그 외 대안 수자원이 부족한 전북평야는 현재 지하수 고갈이 농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된 상황이다.
농업 생산성과 농민 생계에 미치는 충격
가뭄과 지하수 고갈은 전북 농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전북 지역 벼 재배 농가의 모내기 지연율은 28%, 파종 실패율은 12%에 달했으며, 수확량 감소 우려로 인해 일부 농가는 재배를 포기하거나 품종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경험이 부족한 대부분의 소규모 농가는 여전히 물 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농작물 피해는 단지 수확량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가뭄으로 인해 작물의 병충해 저항력이 약화되고, 품질이 저하되며, 이는 시장 가격 하락과 수익성 저하로 이어진다. 전북지역 농협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기준 농산물 경매가 평균 하락률은 14%, 일부 지역에서는 농가 소득이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들의 심리적 피로감도 누적되고 있다. 물 걱정, 수확 걱정, 대출 상환 불안 등은 농촌 고령화와 이탈 가속화의 배경이 되며, 일부 고령 농가는 “더는 농사 못 짓겠다”며 경작을 포기하고 있다. 이처럼 가뭄은 단기 피해를 넘어, 농업 기반의 구조적 붕괴와 농촌 사회의 지속성 위기로 직결되는 복합 재난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의 물 관리와 농업 대응 전략
기후 위기 시대, 전북 평야지대가 반복적인 가뭄과 지하수 고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물 관리 방식에서 벗어난 다층적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가장 시급한 과제는 농업용수 공급 시스템의 다변화다. 대형 저수지 확장, 하천수 연결, 재이용수 도입 등 복합 수자원 확보 체계를 마련하고, 지역별 수자원 수요 예측에 기반한 스마트 급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지하수 이용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과 규제 강화도 필요하다. 지하수 수위 자동 측정망을 확대하고, 일정 기준 이하로 수위가 하락할 경우 관정 가동을 제한하거나 공동 이용을 유도하는 정책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또한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을 막기 위해 관정 등록제와 면허제도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작물 중심의 농업 구조 전환도 고려할 시점이다. 물 사용량이 많은 벼농사에서 상대적으로 물에 덜 의존하는 콩, 밀, 사료작물 등으로의 품종 전환을 장기적으로 유도하고, 이를 위한 재배 기술 교육 및 수매 가격 보장 제도도 병행되어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의 농업은 ‘물과의 싸움’이 아니라 ‘물에 맞는 농업’을 설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농민과 지자체, 중앙정부가 협력하는 기후 위기 대응형 농정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다. 반복되는 가뭄은 단기 지원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장기적 관점에서 수자원 관리, 기후 리스크 평가, 농업 구조 재설계를 총망라한 종합 대책이 절실하다. 전북 평야는 대한민국의 쌀 생산의 핵심 기반이다. 이 땅이 지속 가능하려면 물 관리와 기후 대응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