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경남 해안 홍수 피해 – 해수면 상승과 침수 리스크 증가
2024년 여름, 경상남도 해안지역은 유례없는 홍수 피해를 겪었다. 특히 통영, 거제, 고성, 남해, 창원 등 해안 저지대에 위치한 시·군에서는 시간당 80mm 이상의 폭우와 만조가 겹치며 주택·도로·항만 침수 사태가 연이어 발생했다. 많은 주민들은 침수로 인해 차량을 잃고, 상점은 영업을 중단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해수 범람으로 소금물이 논밭까지 유입되는 피해도 보고되었다.
이러한 피해는 단순히 강한 비 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해수면 상승과 저지대 침수 위험의 고조, 그리고 기후 위기로 인한 기습성 집중호우 빈도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경남 해안은 ‘만조+폭우+해수면 상승’이라는 3중 재해 구조에 노출되고 있다. 특히 도시 확장과 항만 개발로 인해 매립된 해안지역은 배수 능력이 떨어지고 완충 녹지 공간이 부족해 침수 피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경남 해안 지역의 홍수 피해 실태, 해수면 상승이 침수에 미치는 영향, 지역 사회와 인프라에 미치는 리스크, 침수 리스크 대응을 위한 해안 도시의 전략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경남 해안지역 홍수 피해 실태와 주요 사례
2024년 8월, 태풍 '한라'가 동반한 집중호우와 만조가 겹치며 경남 해안 곳곳에서 극심한 침수 사태가 발생했다. 통영시 도남동 일대는 도로와 상가가 무릎 이상 물에 잠겼고, 거제 장승포항에서는 주차된 차량 수십 대가 바닷물에 침수되었다. 고성, 사천, 남해군 일부 지역은 하천 범람과 해수 역류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논밭이 염해 피해를 입고, 일부 주택가에서는 상습 침수로 인한 이주 요청 민원이 급증했다.
경남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024년 여름철 침수 관련 긴급출동 건수는 총 1,236건으로, 전년도 대비 약 70% 증가했다. 특히 창원 진해구와 마산합포구는 항만 인근 저지대가 반복적으로 침수되는 대표적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이들 지역은 평균 해발 2m 이하에 위치해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이러한 침수는 단지 인근 해안도로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항만 운영 중단, 상업활동 제한, 교통 두절, 상하수도 역류 등 도시 기능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침수 이후에도 수일 동안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 도시기능 회복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있다. 경남 해안지역은 지금, 반복되는 해양·기상 복합재해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해수면 상승과 침수 위험의 구조적 연관성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해안 도시 침수 위험을 구조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경남 해안의 평균 해수면은 연평균 3.3mm씩 상승 중이며, 이는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통영과 거제, 창원 마산만 일대는 해수면 상승률이 더욱 빠르며, 해수면이 높아질수록 만조 시점 침수위험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특히 만조와 폭우가 동시에 발생할 경우, 해수면이 이미 높아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지표로 떨어진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내수 역류 침수'는 대부분의 저지대에서 발생하며, 배수펌프 용량을 초과하거나 조위(潮位) 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 실제로 2024년 7~8월, 마산만 일대에서는 내수와 해수가 함께 뒤섞여 하수관이 역류하는 복합침수 현상이 17건 보고되었다.
또한 해수면이 상승하면 기존 방재시설의 설계 기준이 무력화된다. 예를 들어 과거 해발 2m 기준으로 설계된 제방이나 방파제는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실질적인 높이 효과가 줄어들고, 극한 상황에서는 월파(海水 넘침)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향후 해수면 상승이 30cm 이상 진행될 경우, 현재 방재시설 중 60% 이상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역 사회와 도시 인프라에 미치는 다차원적 리스크
해안 침수는 도시 기반시설과 지역 공동체에 다차원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교통, 상수도, 전력 설비 등 도시 인프라 마비다. 실제로 2024년 여름, 진해구 웅천동 일대에서는 침수로 인해 지하철 공사 현장이 중단되었고, 도로가 끊기며 응급차량 진입이 불가한 상황도 발생했다.
또한 해수 범람이 주거지까지 닿으면서 염해(소금물 유입)에 따른 가구 내 전기 설비 고장, 벽체 부식, 곰팡이 발생 등이 장기적 피해로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고령자 주택에서는 재해 이후 장기간 거주 불능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이처럼 해수 침수는 물리적 피해를 넘어, 주민의 건강권과 안전권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경제적 피해도 크다. 항만 침수로 인해 수산물 운송이 지연되고, 어선이 정박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며, 지역 소상공인과 수산업 종사자는 매출 감소와 장기적 피해 복구 부담을 동시에 떠안고 있다. 해수 침수가 잦아질수록 해안도시의 부동산 가치 하락, 관광 이미지 타격, 기업 투자 유인 약화 등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손실로 확대된다.
또한 시민들은 반복되는 침수에 대한 심리적 스트레스와 기후 불안정에 대한 생활 회의감을 느끼게 되며, 일부 지역에서는 기후이주(Climate Migration)의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경남 해안도시는 지금, 단순한 재난이 아닌 생활환경 붕괴의 위협 앞에 서 있다.
해양침수 리스크 대응을 위한 도시 전략과 정책 제언
해수면 상승과 복합 홍수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경남 해안도시는 ‘침수 회피’에서 ‘침수 적응’으로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대응은 침수위험지역의 지도화 및 등급화이다. 현재 일부 지역은 고도정보가 정확히 반영되지 않아 사각지대가 존재하며, 수위·강수·조위 데이터를 통합 분석한 ‘복합침수위험지도’ 구축이 시급하다.
둘째, 기존 방재시설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해수면 상승을 반영한 신규 설계기준 도입, 노후 펌프장 교체, 제방 높이 상향, 자동 차수벽 설치 등 능동적 방재 인프라 구축이 요구된다.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배수조를 겸한 다목적 공원, 습지, 생태저류지 등 자연 기반 해안방재 설계(NbS)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셋째, 침수 피해를 전제로 한 건축 및 도시계획 기준의 전환이 필요하다. 해안선 인근의 주택 및 상업시설은 고상식 구조(지상 1층 높이 기준 상향), 건물 하부 방수 설계, 침수 감지 자동 경보 시스템 등의 기술을 반영해야 하며, 신규 택지 개발 시에는 침수 영향권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한 입지 제한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기후 위기 대응 교육과 커뮤니티 기반의 조기 경보 시스템 도입이 병행돼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기후 취약가구 침수보험 지원제도’, 장기적으로는 침수 적응형 도시로의 전환을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통합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지금 경남 해안은 물러설 수 없는 기후전선 위에 있다. 해안도시의 미래는 곧, 기후대응의 수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