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정읍·임실 가뭄 장기화 – 내륙 서부지역의 수자원 고갈과 농업용수 확보 문제
전라북도 내륙에 위치한 정읍시와 임실군은 쌀, 고추, 배추, 감자, 콩 등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밭작물·논농사 기반 지역으로, 오랜 기간 동안 서부 농업지대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5년 동안, 이들 지역은 매년 봄철과 초여름에 가뭄이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비가 안 오는 해’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수자원 고갈과 농업용수 확보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구조적 기후 리스크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읍과 임실은 큰 하천이나 대형 저수지가 없고, 산지에서 흐르는 지류와 소규모 저수지에 물 공급을 의존하는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강수 패턴이 불규칙해지고, 겨울과 봄철 강수량이 감소하면서, 봄 파종기와 여름 생육기에 필요한 농업용수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정읍·임실의 가뭄 발생 현황과 수자원 변화, 기후변화에 따른 지역 강수 패턴의 구조적 변화, 장기 가뭄이 농업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지속가능한 농업용수 확보를 위한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정읍·임실 가뭄 실태와 수자원 고갈 현황
2023년과 2024년 봄철, 정읍과 임실은 각각 3개월 이상 누적 강수량이 평년 대비 50% 이하로 떨어지는 심각한 가뭄 상태를 경험했다. 특히 4월과 5월 두 달간 정읍시의 강수량은 38.4mm, 임실군은 41.6mm로 평년의 절반 수준이었으며, 농업기술센터와 농민들 사이에서는 ‘파종 자체가 어려운 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수분 부족 현상이 심각했다.
문제는 이러한 가뭄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최근 5년 중 4년간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이다. 정읍과 임실 일대의 소형 저수지들은 이미 4월 중순부터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일부 지역은 관정(지하수)을 이용한 긴급 용수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지하수도 제한적이며, 지속적인 사용 시 고갈 및 지반 침하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해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해당 지역은 큰 하천의 수계를 벗어나 있어 타 지역에서 물을 끌어오는 것이 쉽지 않으며, 농업용수를 위한 기반시설도 대규모화되어 있지 않다. 결국, 가뭄이 오면 곧바로 작물 피해로 이어지는 매우 취약한 물 인프라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강수 패턴의 구조적 변화
정읍·임실의 가뭄 장기화는 단순히 ‘우연히 비가 안 온 것’이 아니라, 기후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최근 한반도는 겨울부터 봄까지 이어지는 시기의 강수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으며, 반면 여름철에는 국지성 집중호우 형태의 강우가 증가하는 추세다.
기상청의 장기기후자료에 따르면, 임실의 3~5월 평균 강수량은 30년 전보다 약 18% 감소했고, 정읍은 같은 기간 동안 강수일수는 줄고 1회당 강수량은 소폭 증가해, 비가 와도 토양에 스며들지 않고 대부분이 유실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농업용수로 활용 가능한 ‘천천히 스며드는 비’가 줄고, 실제 활용 가능한 수분은 급감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겨울철 강수량이 줄어들면, 봄철 지하수나 계곡수도 감소하게 된다. 강설량이 줄고, 눈이 일찍 녹거나 아예 쌓이지 않으면, 해빙기 유입수량이 줄어들어 봄철 수문 순환이 비정상적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구조는 점점 더 많은 해에 반복되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중장기 가뭄 구조로 고착화되고 있다.
장기 가뭄이 농업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장기 가뭄은 농작물 생육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뿐 아니라, 지역 농가의 경제적 기반과 정주 여건에도 광범위한 악영향을 미친다. 먼저 작물 피해 측면에서는 파종 지연, 모종 활착률 저하, 초기 생육 불량, 수확량 감소가 반복되며, 이는 곧 품질 저하 및 판매 단가 하락으로 이어진다.
정읍에서는 2023년 봄 가뭄으로 인해 감자와 고추 작물의 작황이 평년 대비 60% 수준으로 떨어졌고, 임실에서는 콩 재배 농가가 파종을 포기하거나 타 작물로 변경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특히 중장년층 고령 농가일수록 물 부족에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나 노동력이 부족해, 가뭄 피해를 그대로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사회 전반에도 부정적인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상습 가뭄 지역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면, 청년층의 귀농·귀촌 의지가 낮아지고, 농촌 인구 유지력이 약화되며, 물 확보가 어려운 지역은 농업 투자 유치도 위축되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게 된다. 또한 가뭄이 반복되면 지역 농산물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농업용수 확보를 위한 대응 전략
정읍·임실의 장기 가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물 인프라 개선과 기후 적응형 수자원 관리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 첫째, 소형 저수지 정비 및 신규 관개시설 설치가 시급하다. 오래된 농업용 저수지의 준설, 누수 차단, 용량 확대 등 기본적인 시설 정비와 함께, 미활용 산림지역의 집수 가능 지형을 활용한 소규모 저장소 설치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하수 자원의 효율적 사용과 보호가 병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관정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하수위 모니터링, 사용량 조절, 재충전 유도 등 지속가능한 관리 체계를 도입해 지하수 고갈과 환경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기후 예보 기반의 스마트 관개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토양 수분센서, 자동관수 시스템, 작물 생육단계별 수분 필요량 분석 등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밀 물 관리가 이뤄지면, 제한된 물 자원으로도 효율적인 재배와 품질 유지가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지자체와 농업기술센터 중심의 기후적응형 농업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품종 전환, 파종 시기 조정, 내건성 작물 도입 등 생산구조 조절과 교육·기술 지원이 결합된 지역 맞춤형 전략이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정읍·임실이 ‘가뭄에 강한 농업 지역’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