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은 예로부터 여름철 시원한 해풍으로 유명한 동해안 대표 도시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폭염과 열대야가 일상처럼 나타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4년 강릉의 폭염 일수는 32일로,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열대야 일수 역시 21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단순히 기온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이 도시만의 독특한 지형과 바람 구조 속에서 ‘시원함’을 담당해 온 해풍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강릉은 동쪽으로는 동해, 서쪽으로는 태백산맥이 위치한 좁은 해안 평야지대로, 여름철 오후 동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체감온도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해풍 발생 빈도와 강도가 급감하면서, 강릉의 여름은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이 글에서는 강릉의 폭염 및 열대야 증가 실태, 해풍 약화의 원인과 기상 구조 변화, 체감온도 상승이 시민 건강과 생활환경에 미치는 영향, 동해안 도시의 폭염 대응 전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강릉의 폭염·열대야 발생 증가 실태
강릉시는 2024년 여름 한 달 동안 35도 이상 고온이 15일 이상 연속되었고, 이는 과거 1990년대와 비교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7월 하순부터 8월 초까지는 최고기온 38.1도, 최저기온 27.4도를 기록하며 연일 폭염 경보와 열대야 특보가 동시에 발령되었다.
과거 강릉은 바다를 끼고 있어 기온 상승폭이 다른 내륙 도시보다 낮았지만, 이제는 수도권 내륙 도시보다 폭염지수가 높게 기록되는 날도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24년 8월 3일 강릉의 체감온도는 41.6도로, 같은 날 서울보다도 높았다.
기상청 기후데이터 분석 결과, 강릉의 폭염 일수는 최근 10년간 매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열대야 발생 일수도 연평균 7일 이상 꾸준히 증가 중이다. 이는 단순한 기상 이변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장기적 기온 상승과 지역적 특성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해풍 약화의 원인과 바람 구조의 변화
강릉의 여름 더위에서 ‘해풍’은 가장 중요한 자연 조절자 역할을 한다. 해풍은 낮 시간 동안 육지보다 상대적으로 서늘한 바다에서 차가운 공기가 육지로 이동하면서 생기는 바람으로, 기온을 낮추고 공기를 순환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강릉 해안에서는 이 해풍의 형성 빈도와 강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기상청 바람 관측 자료에 따르면, 2024년 7~8월 사이 강릉에서 풍속 2m/s 이상 해풍 발생일수는 7일에 불과했으며, 이는 2010년대 평균보다 40% 이상 감소한 수치다. 해풍이 약화되는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해수면 온도의 상승이다. 동해 연안의 해수면 온도는 여름철 기준 2도 이상 상승했으며, 이는 해풍 형성에 필요한 ‘육지-해양 간 온도차’를 약화시킨다. 바다가 예전만큼 차갑지 않기 때문에 해풍이 만들어지지 않거나 약하게 형성된다.
둘째, 도심 열섬현상과 고기압 정체다. 도심의 아스팔트, 콘크리트는 복사열을 저장하고, 낮 동안 축적된 열기가 밤까지 유지되며 기류 순환을 방해한다. 게다가 동해안 상공에 고기압이 장기 정체할 경우, 대기 흐름 자체가 억제되며 바람이 불지 않는 ‘무풍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강릉은 예전과 달리 해풍이 불지 않는 ‘답답한 더위’에 시달리며, 도심은 마치 내륙 도시처럼 고온과 무풍이 결합된 폭염의 중심지로 바뀌고 있다.
체감온도 상승이 시민 건강과 생활환경에 미치는 영향
폭염과 열대야가 일상이 되면서, 강릉 시민들의 건강과 일상생활은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우선,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강릉시 보건소에 따르면 2024년 여름 온열질환 응급 환자 수는 전년 대비 58% 증가했으며, 이 중 60세 이상 고령층이 65%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야외 노동자, 배달 기사, 청소 종사자 등 노출 직종 종사자의 위험이 극도로 높다.
또한 열대야가 길어지면서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시민도 늘고 있다. 밤에도 기온이 27도 이상 유지되며, 가정 내 냉방비 부담 증가와 함께 에너지 취약계층의 건강권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 에어컨 사용은 전력 소비를 증가시켜, 2024년 8월 강릉의 여름철 전력 피크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생활환경 측면에서도 도시 전반의 ‘더운 구조화’가 고착화되고 있다. 더위로 인해 낮 시간대 야외 활동이 줄고, 소상공인은 낮 매출이 감소하며, 학교에서는 실외 체육 수업이 취소되는 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폭염으로 인해 도심 가로수가 시들거나, 가정 내 화초가 고사하는 등 생물환경의 회복력도 약화되고 있다.
동해안 도시의 폭염 대응 전략과 기후적응 방향
강릉을 포함한 동해안 도시는 기후변화 속에서 더 이상 '시원한 해풍 도시'라는 기존 이미지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자연 기반 조절 메커니즘에 의존하던 폭염 대응 전략을 전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첫째, 도심 열섬 저감을 위한 도시 구조 개선이 시급하다. 도시 내 투수성 포장 확대, 녹지 비율 확보, 바람길 확보 등을 통해 도시 자체의 열 방출 능력을 높여야 한다. 특히 건물 밀집 지역의 쿨루프(차열 지붕) 도입, 벽면 녹화, 미스트 분사 시설 설치 등이 필요하다.
둘째, 해풍을 모사하는 인공 바람 시스템 도입도 고려할 수 있다. 주요 광장, 대중교통 정류장, 학교 운동장 등에는 냉풍 쉼터나 이동식 쿨링존을 배치해 폭염 상황에서도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취약계층 중심의 에너지 복지 강화가 필요하다. 폭염 경보 시 전기요금 지원, 이동형 냉방버스 운영, 재난형 냉방 키트 지원 등을 통해 건강권 사각지대 해소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적응형 도시계획 수립과 시민 참여형 대응체계를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시민 스스로 폭염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 정보 제공을 강화하고, 기후위기 대응 예산과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강릉은 더위에도 ‘살 수 있는 도시’로의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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