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이상기후 사례 중심 기후위기

[기후 위기]전남 보성·고흥 폭염 피해 – 녹차 산지의 이상고온과 농업기후대 변화

twinklemoonnews 2025. 7. 9. 20:47

전라남도 보성과 고흥은 한국의 대표적인 녹차 재배지이자, 청정한 해양성 기후에 기반한 고품질 녹차 생산지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 지역에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며 녹차 산업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2023년과 2024년 여름, 연속된 폭염과 열대야, 이른 고온 현상은 녹차 생육에 결정적인 피해를 주고 있으며, 일부 농가는 수확량 감소와 상품성 저하로 폐농까지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녹차는 일반 작물보다 기온에 민감한 작물로, 20~25도의 온도와 고른 습도, 일조량이 균형을 이룬 환경에서 가장 잘 자란다. 그러나 최근에는 3월 말부터 이른 고온 현상이 시작되어 발아 시기가 앞당겨지고, 이어지는 4~5월의 고온과 일조 과다로 인해 잎이 말라붙거나 수분 스트레스를 받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농업 기상 이변이 아니라, 기후대 자체의 이동이라는 구조적 전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보성·고흥의 폭염 및 고온 일수 변화 실태, 녹차 생육에 미치는 기후 영향, 지역 농업경제와 생산체계 변화, 지속 가능한 녹차 농업을 위한 대응 전략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보성·고흥의 폭염 현황과 기온 변화 실태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여름 보성의 폭염일수는 총 26일, 고흥은 24일로 각각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평균 최고기온은 34도에 달했으며, 체감온도는 38도 이상까지 치솟은 날도 적지 않았다. 특히 6월 말부터 이미 30도를 넘는 이상고온이 시작되었고, 7월과 8월에는 연속 열대야 현상이 발생하여 식물의 야간 호흡 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기온 상승은 단기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장기적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보성의 연평균 기온은 1.3도 이상 상승했으며, 폭염 일수는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은 과거에는 속하지 않았던 중간기후대(온난지대)로 분류되기 시작했고, 전통적인 ‘남부 해양성 기후’의 특징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해풍과 해무의 영향을 받아 여름철 고온을 완화시키던 고흥의 연안지역조차 열기를 식히지 못하고, 오히려 무풍 고온 상태가 지속되는 현상이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단순한 날씨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 농업 기후대가 북상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상고온이 녹차 생육에 미치는 영향

녹차는 기후 조건에 매우 민감한 작물이다. 특히 3~5월 사이의 평균 기온, 일교차, 토양 습도, 직사광선의 강도가 잎의 품질과 수확량을 좌우하는데, 최근 들어 이 모든 요소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첫째, 발아 시점의 변화다. 기온이 평년보다 빨리 오르면서 녹차나무는 예정보다 1~2주 일찍 새싹을 틔우고, 이는 수확 시기를 앞당긴다. 문제는 이른 수확 시기 동안에 갑작스러운 고온이나 강풍, 일조 폭주 현상이 발생하면 신엽(어린잎)이 타거나 말라붙는 현상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둘째, 일조량 과다와 수분 부족이다. 예년보다 강한 일조가 지속되면서 녹차 잎이 황변 되거나 변색되고, 이로 인해 색과 향의 품질이 저하된다. 또한 토양의 수분 증발 속도가 빨라져 관수를 강화해야 하지만, 일부 지역은 관정이 부족하거나 수자원 확보가 어려워 생육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셋째, 해충 증가 및 병해 악화다. 기온이 높을수록 녹차 해충의 번식 주기가 빨라지고, 특히 차나무잎벌레, 흰가루병 등 해충성 병해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농약을 자주 사용할 수 없는 유기농 차밭의 경우, 이상고온에 따른 생태계 불균형으로 해충 피해를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온은 녹차의 수량 감소뿐 아니라, 고품질 잎 생산 자체를 어렵게 만들며, 이는 시장 가격 경쟁력에도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기후위기 녹차밭

 

지역 농업경제와 생산체계에 미치는 구조적 변화

보성과 고흥은 녹차 단일 작목에 의존도가 높은 지역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충격은 곧바로 지역 경제에 타격을 준다. 특히 수확량 감소 → 가격 하락 → 농가 수익 감소 → 농지 방치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2024년 기준, 보성군의 녹차 수확량은 전년 대비 17% 감소했고, 고흥 일부 유기농 단지에서는 전체 수확량의 절반 이상이 폐기되었다. 이로 인해 농가당 평균 소득은 전년보다 22% 감소했고, 특히 1~2ha 미만의 소규모 농가는 생계유지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일부 농가에서는 녹차에서 블루베리, 감귤, 아로니아 등 타 작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곧 보성·고흥의 전통 차 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차 관광 산업 역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잎 색이 고르지 않거나 생산량이 줄어들면, 차밭 체험·관광 자원으로서의 매력도 하락하며, 이에 따라 지역 축제나 체험농장도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일회성 기후 이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업기상청에 따르면, 전남 동부권은 향후 10년 내 현재보다 평균기온이 1도 더 오를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이 지역은 녹차 적지(적합지역)에서 점차 제외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지역 전체 농업계획의 전환과 기후적응형 정책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속 가능한 녹차 농업을 위한 기후적응 전략

전통 차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한 농업 기술과 정책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기후내성 품종 개발과 보급 확대가 필요하다. 고온에서도 생육 가능한 신품종 녹차나무, 잎의 수분 유지력이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이를 조기에 보급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그늘막, 차광망, 자동 관개 시스템 등 스마트농업 기반 시설을 확대해 생육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미세기후 모니터링을 통해 잎 온도, 토양 수분 등을 실시간 측정하고, AI 기반 생육 예측 모델을 도입하면 이상고온 피해를 사전에 줄일 수 있다.

셋째, 생산·가공·유통 구조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생잎 수확에만 의존하지 않고, 차 가공품(파우더, 음료, 화장품 등)으로의 가공 산업 확대, 복합 작목 체계 도입 등을 통해 농가의 소득 구조를 안정시켜야 한다. 또한 고온 피해로 인한 품질 저하 차도 지역 특산 가공 브랜드로 탈바꿈시키는 스토리텔링 마케팅 전략도 유효하다.

마지막으로, 기후 위기 시대에는 지역 차 산업을 ‘문화+생태+기후 대응형 산업’으로 통합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농민, 연구기관, 지자체가 협력해 기후적응형 녹차 산업 전략 로드맵을 수립하고, 재해 대비 교육과 보험, 재해복구 기금 등 기후 리스크 대비 체계적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남의 녹차 산업은 지금,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